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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동지(洞誌)를 이어받아 현대에 다시 기록하는 최초 사례1790년 "망우동지" 와 2022년"新망우동지"
동래 정씨, 평산 신씨, 의령 남씨 집성촌에서 약 5만 명 거주 도시로 변모
대표기자김태민 기사입력  2023/07/05 [16:00]

[국악신문사 대표기자 김태민]서울역사박물관은 망우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신망우동지(新忘憂洞誌) 보고서를 지난 6월 발간하였다. 

▲ 망우동표지     © 국악신문사

 

서울역사박물관이 2007년부터 진행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현대의 동지(洞誌)’ 기록하는 사업이다. 망우동의 조사 성과를 담은 "新망우동지"는 1760년 간행된 「망우동지"와 262년 시간의 차를 두고 현대의 망우동을 기록한 최초의 사례이다. 

 

1760년 "망우동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동지(洞誌)

 

서울역사박물관 등록유물 1번, 󰡔망우동지󰡕는 망우동 양원리에서 오랫동안 세거한 동래 정씨 종중에서 박물관으로 기증한 유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이다. 

▲ 망우동지     © 국악신문사

 

"망우동지"는 조선시대 망우동에 세거한 동래 정씨, 평산 신씨, 의령 남씨 집안에서 작성한 동(洞)의 기록이다. 영조 36년(1760)에 상ㆍ하 두 권으로 필사 간행된 󰡔망우동지󰡕는 지명 연원ㆍ산천 및 능묘ㆍ고적ㆍ풍속ㆍ토산ㆍ지역 인사들의 행적 등을 수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동 단위 지방지로는 "주자동지"와 함께 유일한 것으로 의미있는 자료이다. 

 

‘망우동’의 명칭은 태조가 현재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건원릉을 능지(陵地)로 정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1760년 주거: 동래 정씨, 평산 신씨, 의령 남씨들의 집성촌

 

양원리(현재 양원역 북쪽 일대)에는 동래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약 600여 년 동안 거주하였다. 고려 말 문신인 정구(鄭矩, 1350~1418)의 후손들이 태조 이성계가 하사한 땅에 묘역과 주거지를 형성하여 안착하였다. 이곳에는 태조가 마셨다는 물맛 좋은 양원수(養源水)가 있어 양원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방축리(현재 동원중학교 주변)에는 의령 남씨들이 태조에게 하사받은 땅에서 조선 후기까지 거주하였다. 태조의 묘소인 건원릉은 원래 의령 남씨의 소유였는데 이성계에게 묘소로 양보하고 대신 충정공 남재(南在, 1351~1419)가 망우동의 땅을 받은 것이다. 

 

입암리(현재 면북초등학교 주변)에는 평산 신씨가 세거하였는데, 이곳은 세종이 신개(申槩, 1374~1466)에게 하사한 땅이다. 신개의 후손들이 대대로 거주하였다가 현재는 종손과 묘역만 남아있다. 선산 옆에는 종손이 거주하는 재실도 남아있다.

 

현재 망우동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평산 신씨 선산에는 30여 기의 묘가 남아 있다. 서울에서 전통문화를 찾기 힘들어진 요즘 매년 음력 10월 2일이면 대규모의 평산 신씨 시제가 거행된다. 직접 제물을 구입하고 조리하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과일 및 약과 등 고임 음식 마련 및 운반 등을 외부 업체에 의뢰하고, 탕, 전 등의 조리 음식은 종부가 담당한다. 각지에서 종친 100여 명이 모여 시제에 참여한다. 

 

2022년 주거: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인구 유입 

 

1968년 망우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착수되었다.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일대가 포함된 195만 평의 대규모였다. 망우지구는 도심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며 ‘동부 서울’로 성장하였다. 1963년 망우동의 인구수는 2,325명이었으나, 20년 만에 20배로 늘어났고, 초·중·고등학교도 11개가 생겨나 늘어나는 학생의 수요에 대응하였다. 1984년에는 서울시도시계획(안)에서 망우동은 부심으로 부상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의령 남씨, 평산 신씨의 집성촌은 해체되었지만 동래 정씨 집성촌은 2020년까지 존속되었다. 동래 정씨의 집성촌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한적한 농촌 마을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되어 아파트로 개발되고 동래 정씨들은 600년 터전을 잃고 곳곳으로 흩어졌다. 

 

1760년 묘역 : 왕의 능지(陵地) 사대부가 선산

 

망우동 주변에는 조선 왕실의 능이 다수 분포되어 있는데, 동쪽에는 건원릉을 비롯한 아홉 개의 능(동구릉)이 있고, 북쪽으로는 강릉과 태릉이 있다. 조선 후기 망우동은 능행을 나서는 왕들의 주요 이동로였다. 

 

망우동에는 사대부의 묘도 많이 조성되어 있었다. 분토산 자락에는 동래 정씨, 아차산 자락에는 평산 신씨와 의령 남씨의 선영이 있었다. 이외에도 분토산에 전주 이씨, 봉화산 자락에 유씨, 여씨, 조씨, 오씨 등의 묘역이 있었다. 

 

2022년 묘역 :일제강점기 ‘망우리묘지’ 조성과 현재 묘지의 재탄생

 

일제강점기 경성은 산 자의 공간도 부족했지만, 죽은 자의 자리도 모자란 상태였다. 1933년 기존의 공동묘지를 통폐합하고 늘어나는 묘지 수요에 대응하여 망우리묘지가 개원하였다. 그러나 도시 내 묘지의 축소정책으로 점차 공동묘지는 사라졌고, 망우리묘지는 28,500여 기의 분묘가 가득차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자 1973년 매장이 종료되었다. 망우리묘지는 유관순열사를 비롯한, 이중섭, 오세창 등 역사적 인물이 안치된 역사성이 인정되어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에는 명칭을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꾸고 묘지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려 노력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망우동에 대규모 묘역이 조성되었는데,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학장인 김활란의 묘지인 금란동산이다. 현재 김활란의 묘는 이장되고 부지는 금란교회, 이화여대 병설학교, 아파트 등으로 개발되었다. 

 

평산 신씨 묘역이 있는 산자락에는 1983년 위락시설인 용마랜드와 수영장 등의 운동시설이 건설되었다. 한때 망우동 주민들의 휴식 및 놀이 장소로 애용되었다. 

 

1760년 교통 : 평해로, 고종과 순종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망우고개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인 평해로는 망우리고개에서 시작하여 앙평과 평창을 거쳐 울진군 평해까지 이어진 도로였다. 경기 동부, 강원 동남부에서 한양으로 진입할 때 망우리고개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평해로는 유배로로도 활용되었는데, 백사 이항복은 망우리고개에서 자신의 심경을 담긴 시를 남기기도 했다. 

 

망우리고개와 연결된 망우로는 조선 후기 동구릉으로 향하는 능행로 역할을 했으며, 고종과 순종의 마지막 길에도 망우로가 함께 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가 동대문운동장에서 거행되었고, 장례 행렬은 오후 5시에 망우리에 도착하여 주정소(능행에서 왕이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어릉에 밤 10시에 도착하였다. 

 

2022년 교통 : 서울의 끝이자 시작점, 망우역과 상봉터미널 

 

망우동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로서 서울의 끝점이자 시작점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1939년 중앙선 망우역이 건설되었고, 서울과 강원도 탄광을 연결하였다. 해방 이후 망우역 주변에는 삼표연탄공장, 아주레미콘 공장 등이 설치되어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85년에는 상봉터미널이 망우역사거리에 들어서 동부권 여객 운송을 담당하였다. 강원도에 있는 군부대로 떠나는 군인들의 이용이 잦았다. 

 

1990년대 후반 교통의 중심지 망우역사거리 일대에는 산업시설의 이전으로 홈플러서,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 쇼핑몰이 속속 채워졌다. 한편 강원권의 주요 도시 여객 노선이 동서울터미널로 바뀌면서 상봉터미널은 점차 쇠락을 길을 걷게 되었다. 

 

1760년 공동체 : 향약의 결성과 상부상조

 

조선시대 망우동은 혈연 중심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였다. 왕에게 하사받은 땅에서 동래 정씨, 평산 신씨, 의령 남씨가 향약(鄕約)을 제정하여 함께 살기 좋은 마을을 꾸려나갔다. 향약은 생활의 윤리 기준, 올바론 풍속, 주민 친화 등의 내용으로 30여 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동리에서 불이 난 자가 있으면 각각 서까래 1개와 이엉 3파(把)와 새끼줄 10파를 내어 규휼 한다.

- 계에서 상사(喪事)가 있으면 각각 쌀 1되와 빈가마니 1립을 내어 부조한다. 

- 망우동 향약 중

 

 

2022년 공동체 : 주민참여의 망우만끽 축제와 아차산 산신제

 

주민들의 공동체는 공동제사와 축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망우 3동 갓바위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아직도 망우산 산신제를 지낸다. 봉화산 산신제(도당제)는 산신할머니에게 올리는 제사이고, 망우산 산신제는 산신할아버지에게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봉화산 도당제(2005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4호 지정)에 못지않게 큰 행사였으나 점차 축소되었고, 현재는 주민 10여 명이 모여서 진행한다. 

 

2022년 10월 29일 중랑캠핑숲에서 민·관·학 관련 단체가 모여 ‘망우만끽’ 망우동 마을 축제가 개최되었다. 망우동에서 활동하는 망우산 마을공동체 ‘마을과아이들’이 주관이 되어 130개의 개인과 단체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공동체마당, 체험마당, 상담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대학교 연구진도 망우동 지도그리기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체험 부스를 마련하여 참여하였다. 

 

사라지고 변화하는 지역에 대한 기록 :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16년 지속 추진

 

2007년 보광동을 시작으로 2022년 망우동, 천호동까지 39개 지역 조사

 

서울역사박물관은 2007년 뉴타운개발로 사라지는 지역의 대한 기록조사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시작하여 2022년까지 39개 지역을 조사하였다. 재개발지역(반포, 왕십리 등), 시장(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 대학가(신촌, 홍대앞 등), 산업지역(인현동, 세운상가 등), 오래된 마을(북촌, 서촌, 동촌 등) 등을 기록하였다. 지역 단위의 생활문화를 매년 2개 지역을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다. 

 

2023년에는 중랑천과 아차산 사이 주거지인 중랑구 중곡동과 서울의 서남부의 경계인 금천구 시흥동을 조사하고 있다. 

 

2022 망우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신망우동지(新忘憂洞誌)』는 서울책방과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 숍, 서울책방, 누리집 (https://store.seoul.go.kr) 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 25,000원. 문의 : 02-739-7033)

김태민기자 gugakpaper@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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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7/05 [16:00]  최종편집: ⓒ 국악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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