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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따듯한 소리
"왜 이 전람회장은 미완성 작품만으로 가득 채워졌습니까?"
국악예술신문 기사입력  2020/09/08 [23:02]

다시 읽는 국악 명저

우리 음악, 그 맛과 소리깔_신대철

 

[국악예술신문] 우리음악에는 적지 않은 헤테로포니*의 요소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대위법과 공통관습적 화성학에 기초한 서양음악에 나타나는 화성(和聲)이 없다. 즉 합창이나 합주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 선율로 연주된다.

 

반면에 서양음악은 각 성부나 악기가 동시에 다른 음을 내는 수직적 관계의 화음, 즉 화성을 갖는다. 그래서 그들은 도(do)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도(do)와 미(mi), (sol)이 동시에 울리는 음 세계를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독주나 독창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반주악기인 피아노가 독주와 독창의 선율에 수직적 음 체계를 지탱해 준다.

 

가끔은 이와 같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이들로부터 우리음악에서의 화성 없음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비평을 듣는 경우가 있다.

 

즉 우리음악은 화성이 없으니 화성이 있는 서양음악보다 단순하고 단순한 우리음악은 보다 복잡한 서양음악보다 진화가 덜 된 음악이며 또 진화가 덜 되었기 때문에 예술성도 서양음악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는 정말로 단순하고도 명쾌한, 때이른 논리에 의한 비평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이들은 이러한 논리에 압도되어 이를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화성이 있고 없음을 비교하는 평면적 사고에 의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을 이러한 평면적 사고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문화의 일부인 음악을 진화론적 사고로 비교·평가한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임도 깨달아야 한다. 더군다나 생물학적으로도 진화론 자체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지닌 가설이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음악을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음악적 사고와 행위에 의해 창조된 음악의 서구적 잣대로 가치를 매김은 섣부른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서양화와 서양음악- 꽉찬 음악

서양음악의 가치를 측량함은 서구적 방법에 의할 때 타당하고 우리의 것은 우리의 방법에 의해 측량할 때 타당하다.

 

▲     © 선임기자김태민

서양음악은 서양인이 즐기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창조되었고 우리의 음악은 우리가 즐기기 위한 그것으로 창조되었다. 단지 불행하게도 근자에 우리가 서양식 교육제도와 사고방식에 젖어 이를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단선율(單旋律) 음악과 서양의 화성적 음악을 그림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이해가 한결 쉬워지리라고 본다.

 

서양화에서 분홍색을 요구할 때 좋은 배색법은 빨간색에 흰색을 섞도록 한다. 그래야 좋은 분홍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방법은 서양음악의 화성적 방법과 그 개념에서 일치한다. 3화음을 만들기 위해 도의 색에 미와 솔의 색을 배합함으로 분홍의 으뜸 3화음을 만들었다.

 

또 파(fa)에는 라(la)와 도의 색을 섞어 버금딸림 3화음을, 솔에는 시(si)와 레(re)를 섞어 딸림 3화음을 만들었다. 즉 색에 색을 더하여 혹은 덧칠을 하여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듯 그들은 음악도 그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수직적 화성의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음악은 꽉찬 느낌을 준다. 반면에 빈 공간적 여백의 여유와 장자(長者)다운 한가로움은 부족하다. 그리고 충일(充溢)함은 엿보여도 담백한 여운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위법에 의한 음악 또한 그렇다.

 

한국화와 우리음악 - 여백의 아름다움

우리의 전통적 그림에서는 이러한 배색법이 고려되지 않는다. 우리의 그림에서는 붓에 검은 먹물을 듬뿍 묻혀 그려 나가는 방법을 택한다. 한번 붓이 지나간 부분에 다시 덧칠을 허용하지 않음이 전통적인 우리 회화의 한 방법이다.

 

한번 붓이 거친 자리가 못마땅해서 다시 덧칠을 함은 금기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덧칠은 개칠로 평가받는다. 맛없는 살구는 개살구요, 맛없는 복숭아는 개복숭아이다.

 

물론 여기서의 개칠은 다시 칠한다는 개칠(改漆)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뜻이야 어떠하든 개칠은 바람직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의 음악이 단선율임은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그림의 경우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 하나의 수평적 색을 원했다.

 

한편 서양화는 캔버스의 구석구석을 색으로 꽉 채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 완성된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므로 서양화의 거의 대부분에서 흰 공간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서양음악의 화성도 이와 똑같은 방법이다.

 

그들에게는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 빈틈과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음들을 수직적 방법으로 꽉 채워 놓는다. 그리고이 채우는 방법도 점점 확대되어 3화음만으로 만족될 수 없어 7화음, 9화음...군집화음 등으로 확대되어 갔다.

 

반면에 우리의 그림은 많은 빈 공간의 여백을 남겨 둔다. 커다랗고 넓은 화선지에 한 일()자 하나만을 써 넣어도 우리에게는 완성된 작품이다. 어떤 전통적 한국화가 화선지 구석구석까지를 색으로 채워 놓았던가?

 

우리의 미술세계에서 그러한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그림은 충분한 여백을 남겨 놓음으로써 묘한 여운과 여유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래서 언제인가 이를 이해 못한 서양의 저명한 화가 한 분이 한국화 전람회장에서 던졌다는 다음의 한마디는 우리에게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왜 이 전람회장은 미완성 작품만으로 가득 채워졌습니까?"

 

단선율의 수평적 음악-여백의 맛

우리음악의 단선율은 우리 그림에서 나타나는 여운과 여유를 지닌, 여백을 인정하는 세계를 지닌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부르는 합창도 사실은 하나의 선율이요, 가야금, 거문고, 젓대, 피리도 모두가 하나로 일관되어 흐른다.

 

바로 그 하나됨 속에 장자의 여유와 일치된 수평적·선적(線的) ()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음악은 서양음악과 같은 화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음악을 우리음악답게 해주는 하나의 특징적 요소이다. 단선율에 의한 이러한 음악은 화성적 음악에 비해 표현의 방법이 솔직담백하여 우리에게 정적(靜的)으로 다가은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반면에 치밀한 조직적 구성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부디 단선율의 음악을 통해서 부드럽고 따뜻한 정적인 멋과 맛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간혹은 단선율의 그레고리안 찬트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부드러움과 몸에 감겨 오는 듯한 나긋함을 맛보아 우리음악을 다시 발견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도록 감히 권한다.

 

    * 헤테로포니(Heterophony) : 음악의 장식법과 주법(奏法) 등의 차이로 생기게 되는 각 성부(聲部), 혹은 악기의 선율 사이에 나타나는 순간적인 미묘한 차이에 의한 복음적(複音的). 이음적(異音的) 요소, 보통 모든 성부와 악기가 동일한 음높이로 한 가지 선율을 연주할 때 생기는, 위와 같은 요소를 말한다.

     국악예술신문 gugakpeople@gugak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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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8 [23:02]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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